경이로움의 지형
먼 곳에서만 경이를 찾던 습관을 내려놓기까지

오랫동안 저는 경이로움이 다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권이 필요한 곳.
긴 비행이 필요한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여행은 세계가 실제로 얼마나 큰지를 다시 기억하는 저만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여행이 조용히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경이로움이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알아보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나를 바꿔놓은 장소들
세계를 바라보는 크기의 감각 자체를 영구히 바꿔놓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파타고니아가 그중 하나였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초원에 서서, 앞바다의 작은 섬들에 모여 있는 펭귄들과 풀밭을 자유롭게 오가는 과나코들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 위로는 안데스 콘도르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하늘을 미끄러져 갔습니다.
풍경이 너무 거대해서, 한동안 저는 저 자신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저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기분 좋게 하찮아졌습니다.

스발바르도 그런 곳이었습니다.
빙하가 북극해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소리는 얼음이 이미 떨어져 나간 뒤 몇 초가 지나서야 도착했습니다.
북극여우 한 마리가 우리가 머물던 숙소 앞을 서성이다 가로질러 가기도 했습니다.
바다코끼리들은 묘하게 호기심 어린 장난스러움으로 우리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어딘가에서, 우리는 해빙 위의 북극곰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의 어느 것도 인간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래서 그토록 겸허해지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경이로움이 자연에서만 찾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펜하겐 북쪽의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에서, 저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Maman 앞에 섰습니다.
그 조각은 단지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몸과 건축,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이 맺고 있던 관계 자체를 다시 배열해 버렸습니다.
조용한 몇 분 동안 저는 분석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냥 서 있었습니다.
다른 장소.
다른 언어.
같은 감각.

그 장소들은 모두 제게 같은 깨달음을 남겼습니다.
세계는 언제나, 제 주의를 붙들고 있던 그 무엇보다 컸다는 것.
경이로움을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
얼마 전 저는 The Mel Robbins Podcast에서 대커 켈트너 박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이로움의 순간이 우리의 웰빙과 창의성, 그리고 연결감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해 온 심리학자이고, Awe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경이로움을,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을 바꿀 만큼 거대한 무언가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것이 꼭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자연에서 옵니다.
어떤 때는 예술에서.
어떤 때는 음악에서.
어떤 때는 다른 사람에게서.
그중 한 가지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경이로움은 아주 작고 평범한 순간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알아보는 법을 배운다면.
그 대화를 들으면서 저는 제가 오랫동안 경이로움을 거리와 조용히 묶어두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멀리 갈수록 더 쉽게 찾아지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하지만 어쩌면 먼 곳이 본래 더 놀라운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낯선 곳은 단지 더 많은 주의를 요구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일 때
모든 것이 처음일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봅니다.
거리 하나하나.
건물 하나하나.
새 한 마리.
대화 하나하나.
아무것도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집은 다르게 작동합니다.
반복은 세계를 조금씩 편집합니다.
아름다움이 사라져서가 아닙니다.
익숙함이 투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뒤에
몇 달의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도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저였습니다.
어느 오후, 동네를 걷다가 담장과 대문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를 보았습니다. 주황색 꽃들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길을 수없이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들이 원래부터 거기 있었는지 정말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있었을 겁니다.
제가 보는 것을 멈췄을 뿐이겠지요.
그 뒤로 저는 도시 곳곳에서 능소화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벽돌담을 조용히 감고 있는 모습.
아파트 사이에서 자라난 모습.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거리에 색을 더하고 있는 모습.
서울이 갑자기 더 아름다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주의가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또 다른 종류의 경이로움
딸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비슷한 것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변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변합니다.
너무 조금씩이어서 대개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러다 어느 날, 아주 평범한 대화 도중에 문득 깨닫게 됩니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조용히 더 독립적이 되고,
더 사려 깊어지고,
더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이라는 것을.
어쩌면 경이로움은 특별한 순간에만 허락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느린 변화 안에도 살고 있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종류의 변화 안에.
여행이 실제로 가르쳐 준 것
여행은 습관을 끊습니다.
습관은 주의를 좁힙니다.
경이로움은 그것을 다시 넓힙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보는 방식을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은 여행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는 방식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 일입니다.
저는 여전히 여행을 합니다.
빙하에서, 미술관에서, 산맥에서, 제 상상보다 오래된 도시들에서 여전히 깊이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경험들이 절반의 배움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돌아온 뒤에 시작됩니다.
집 앞의 능소화를 알아볼 때.
평범한 저녁 식사가 예상하지 못한 대화가 될 때.
딸이 또 조용히 자랐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익숙한 거리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질 때.
어쩌면 경이로움은 애초에 특별한 장소에 숨어 있지 않았습니다.
숨어 있던 것은 제 주의였습니다.
잠시 떠올려 볼 질문
여행은 제게 경이로움을 알아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일은, 그것이 그동안 또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쓸모 있는 질문은 다음에 어디로 떠날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가 무엇을 알아보기를 멈췄는가일 겁니다.
꽃 하나.
대화 하나.
자라고 있는 아이 하나.
평범한 하루 하나씩.
지금 이 시점에서 이 글이 와닿는다면, 저는 창작의 전환기, 커리어의 재구성, 그리고 더 확장된 방식의 삶과 일을 탐색하는 분들과 1:1 코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Jay